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(문단 편집) === 전후 처리 === 종전 직후였던 [[1918년]] 12월에 진행된 선거에서 로이드 조지가 이끄는 자유당 + 보수당 연립 내각은 압승을 거두면서 국민의 재신임을 받는다. 전쟁은 끝났지만 그 뒷처리는 남아있었고, 1919년 [[파리 강화 회의]]에 [[빅4#s-3|빅4]]의 일원[* 파리 강화 회의 조약들의 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4개국과 그 지도자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로이드 조지 외에는 [[우드로 윌슨]] 미국 대통령, [[조르주 클레망소]] 프랑스 총리, 비토리오 오를란도 이탈리아 총리가 포함된다. 아래는 파리 강화 회의 당시 4개국 정상의 사진. [br] [[파일:external/media1.britannica.com/71448-004-9BCD8C64.jpg]]]으로 참가한 로이드 조지는 전반적으로는 독일에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여줬다.[* 클레망소와 달리 독일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재기 불능으로 만드는데 강경히 반대했다.하지만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기 전 독일인들을 레몬짜듯 쥐어짜야 한다고 발언했고, 군사보다는 경제적으로 옭아매려 했다. 또한 군사적으로도 적당히 약화시킬 필요는 그도 느꼈기 때문에 [[빌헬름 2세|카이저]]의 재판과 [[폴란드 회랑|신생 폴란드의 바다로 나가는 통로 확보]] 등의 안건에는 동의를 표했다.] 베르사유 조약 체결 이후에는 오랜 세월 영국의 골치를 썩힌 아일랜드의 독립을 '''사실상'''[* 사실상이라는 표현에서 보이듯이 형식상으로 아일랜드는 [[아일랜드 자유국]]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일부로 남아있었으며, 영국의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만 했다. 게다가 [[북아일랜드|북동부 일부가 영국의 영토로 남아있던 건]] 덤. 아일랜드가 완벽히 영국에게서 독립을 선언한 것은 1937년의 일이다.] 승인한다. 이런 국제 문제 이외에도 로이드 조지는 내정 개혁도 실시한다. 전쟁 와중에 남성을 대신하여 생산 현장에 투입됐던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갔고 이러한 요구에 응하여 30살 이상의 [[여성 참정권|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.]][* 영국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연령대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은 1928년이다.] 그 외에도 최저임금 관련 법안, 건강 보험 등의 제도를 개정하면서 로이드 조지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영국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